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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혜에서 연재하는 수필 및 컨텐츠를 볼 수 있습니다.

종종 UFC를 본다. 경기를 보며 가장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은 바세린 도포를 마친 선수가 자신의 팀과 가볍게 포옹을 하고 케이지 안으로 들어서는 장면이다. 케이지 위로 딛는 그 한 발이 매우 무겁고 용기있는 발걸음으로 다가온다.


얇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코앞에 내 팀이 있지만 케이지 안에선 철저히 혼자일 수 밖에 없다. 정해진 시간을 오로지 혼자 힘으로 버티고 나아가야한다. 상대 선수에게 처절히 맞고 있다고 해서 밖에 있는 동료가 뛰어들어와 막거나 거들어줄 수 없다. 그 어떤 타인도 자신을 완벽히 보호해주지 못한단 사실을 상기하게 하는 장면이다.


어릴 적 아버지를 만능해결사로 여기지만 커가며 알게된다. 크고 복잡한 세상에서 아버지가 대신 해결해줄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. 케이지 밖에 서있는 아버지와 케이지 안에서 발버둥 치는 나. 경기장으로 달려 들어가는 선수를 보며 괜한 감상에 빠진다.


나 역시 날 좋아하고 위해주는 사람이 몇 있어 그들에게 마음의 짐을 잠시 덜고 위안을 얻기도 하지만 온전히 홀로 서야하는 순간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많다.


케이지 밖에서 소리친다. '머리를 더 움직여.' '네 페이스야, 더 치고 나가.' '흥분하지 말고 스텝을 밟아.' 체력이 몽땅 떨어져 정신력으로 버티고 서있는 선수에게 과연 그 소리가 들릴까? 동료들의 목소리가, 케이지 안으로 날아가 굉장한 힘으로 선수에게 닿는 모습을 상상한다.

록'셔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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